17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흥인동 골목가 한 건물의 지하. 서울지방경찰청 이명섭 경사(38)와 김영봉 경사(41)가 철문 앞을 지키던 안모 씨(46)에게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안 씨가 육중한 철문 두 개를 열어젖히자 안에선 불법 성인용 도박게임인 스크린경마가 한창이었다. 종업원과 손님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기도 전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현장을 급습한 경찰은 모두 서울경찰청의 상설단속반원들. 3월 23일부터 성매매업소와 불법오락실을 집중 단속해 오고 있는 ‘단속의 달인’이다. 경찰이 상설단속반을 만든 것은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대부분의 불법오락실이 음성화해 적발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10명을 비롯해 9개 일선 경찰서 54명 등 모두 64명이 단속 현장을 누비고 있다.
○ 입구에 감시원 두고 단골손님만 받아
서울지방경찰청의 불법오락실 상설단속반원들이 18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성인오락실에서 바다이야기 게임기를 조사하고 있다.
HTN_MPHOTO 0“오늘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철문을 잠그고 걸쇠까지 걸어놓은 업소가 많아 평소엔 문을 부숴야 하는데 오늘은 힘 안 들이고 들어왔네요.”
상설단속반장 최정식 경감(51)이 두께 10cm의 육중한 철문을 가리켰다. 맞은편 벽에 3중문으로 된 비상구가 보였다. 그는 현관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이게 폐쇄회로(CC)TV 카메라”라고 말했다. 카메라는 현관문 무늬처럼 보이는 작은 점(지름 0.5cm)들 가운데 하나였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CCTV 카메라를 위장하고 있다. 최 경감은 “인물포스터를 붙여놓고 눈동자에 구멍을 뚫어 카메라를 설치하는 곳도 많다”고 전했다.
불법오락실이 단속을 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심의를 통과한 오락기에 불법 게임 소프트웨어가 담긴 USB 메모리를 꽂았다가 단속이 나오면 USB 메모리를 뽑거나 오락기의 전체 전원을 내려 초기의 ‘정상 버전’으로 돌려놓는다. 최 경감은 15일 지상층에 모니터를 두고 지하의 비밀 공간에 오락기 본체를 두어 겉보기에는 PC방인 것처럼 위장한 불법오락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 단속 피해 자리 옮겨가며 게릴라식 영업
단속반은 3월 이후 17일까지 불법오락실 200여 곳을 단속했다. 이판수 경위(39)는 “한 군데 단속하면 그 일대 오락실은 소문을 듣고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강북과 강남을 오가야 한다”고 말했다. 17일에도 단속반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첩보 및 신고가 접수된 강북 도봉 관악 중구의 5개 오락실을 차례로 돌았다.
현장에 출동하지만 허탕을 치는 경우도 많다. 17일에도 6건이 허탕이었다. 모두 휴업이거나 허위신고였다. 이 경위는 “불법오락실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게릴라식 영업’을 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는 자리를 옮긴 업주가 일부러 옛날 업소 자리를 신고해 허탕 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적발된 업주와 종업원은 초범일 경우 수십만 원의 벌금을 내고 재범일 경우 오락기를 개·변조했다면 2000만 원 이하, 불법오락기를 들여놨거나 환전이 연루돼 있으면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최 경감은 “잘되는 오락실은 하루에 수천만 원씩 번다”며 “꾸준한 단속에도 불법오락실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